조선조 중기 도학자(道學者) 은봉(隱峯) 안방준(安邦俊, 1573-1654)
선생의 문집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은봉
선생은 1573년(선조 6)에
태어나, 죽천(竹川) 박광전(朴光前)과
우계(牛溪) 성혼(成渾) 문하에서 수학하셨습니다. 유학(儒學)의 실천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은봉 선생의 사상체계와 역사의식이 담겨 있는 문집 『은봉전서』는
생존할 당시에는 『우산수필(牛山隨筆)』ㆍ『은봉수필(隱峯隨筆)』ㆍ『매환필기(買還筆記)』
등으로 불렸습니다. 이 초고를 1773년에 5책 10권으로 편차(編次)하고, 보성의 대계서원(大溪書院)에서
『우산집(牛山集)』(목활자)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여 세상에 보급했다(초간본).
이어 1805년에는 1책 2권으로 편차하여 간행했으며,
1864년에는 원집(原集)과 별도의 저술을 모두 합쳐 『은봉전서(隱峯全書)』 20책을
대계서원에서 다시 간행했다(중간본). 1966년에는 부록 2책을 중간하고 속집(續集) 1책 2권을 편간(編刊)하였습니다. 이번에 『은봉전서』에서 원집(原集) 5책
10권, 부록(附錄) 2책 4권, 속집(續集) 1책 2권을 뽑아 우리말로
옮긴 『국역 은봉전서(<&26040>)』에는 시, 상소문, 편지,
기축옥사와 임진왜란에 관한 다양한 기록들, 진유(眞儒)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우산답문(牛山答問)」 등이 들어 있습니다.
역주자는
安東敎 박사(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전임연구원)이며
상세한 역주를 달았습니다. 권말에는
번역의 원본을 영인하여 붙였습니다.
죽천집'(竹川集)은
문강공 죽천
박광전(文康公 竹川 朴光前, 1526~1597)
선생의 문집입니다. 이 문집은 몇 차례 편집되었는데. 처음 원집(윤봉조
序, 1739와 박내석 跋, 1754) 은 1책으로 초간되었고, 증보 교정 재편한
重刊本(송치규 序, 박형덕 跋, 1809)이 4권2책으로 보성 龍山書院에서
나왔습니다. 이어 속집(기정진 跋, 1875; 오진영 跋, 1924)이 이루어진
후 증책한 3간본이 9권4책으로 寶城 福內 竹谷精舍에서 安圭容(판권은
安鍾宣 명의)이 1930년에 출간하였습니다. 이 3간본은 근래 몇몇 출판사에서
영인본으로 출간된 바 있습니다. 이『國譯 竹川集』은 3간본을 번역한
번역본으로서, 상세한 역주를 달았고 영인도 책 뒤에 붙였습니다. 역주자는
安東敎 박사(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전임연구원)입니다.
송촌집은
퇴우당(退憂堂) 안음(安崟, 1622-1685) 선생의
문집이다. 이 문집은 증손인
지암공 창혐이 편찬한 유고 3권이
수화를 입어 선생의 학문과 사상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다가 1924년에
만회공(晩悔公)
성환(聖煥)의
뜻을 이어받은 8대손 둔사공(遁舍公)
규호(圭灝)의
헌신으로 수습된 연보(年譜)
초본과 소장(疏章)
및 시문 약간으로나마 선생의
학술과 정신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의 문집은 국권을
잃은 시기에 다시 묻일 듯하다가,
둔사공의 둘째 아들 종은(鍾殷)이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문하에서 척사부정(斥邪扶正)의
학통을 이은 족숙 회봉공(晦峯公)
규용(圭容)에게
교정을 청하여 1961년에 비로소
간행이 되었고 1998년 회봉공의
증손인 안동교(安東敎)
박사가 《현종실록》과《미촌집(美村集)》에서 찾아낸 단편을 보유로 덧붙이고 국역하였다.